한반도 동남쪽의 높은 산맥과 낙동강, 그리고 바다로 둘러싸인 신라는 너른 평야가 적고 여러 나라와 교류가 어려워 고구려나 백제보다 발전이 더디었지요.그러나 신라는 6세기에 접어들어 불교를 받아들이고, 율령을 반포하면서 나라의 기틀을 튼튼하게 잡아갔어요.또한 화랑도를 규모가 큰 단체로 만들어 많은 인재를 길러냈지요.나라를 정비한 신라는 진흥왕 때에 이르러 대외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어요.한편 고구려 장수왕에게 한성을 빼앗기고 수도를 웅진으로 옮긴 백제가 다시 발전할 기반을 마련한 것도 6세기 무렵 성왕 때였지요.성왕은 수도를 비좁은 웅진(공주)에서 넓은 벌판인 사비성(부여)으로 옮기고, 제도를 정비하고, 불교를 장려하였지요.그리고 중국과 문물을 교류하였고, 왜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불교를 비롯한 여러 문물을 전해 주었어요.마침내 이때 고구려에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어요.북방에서 세력을 키우던 돌궐이 고구려를 공격하였고, 왕위 계승을 놓고 벌인 귀족 간의 권력 다툼으로 고구려의 국력은 이전보다 훨씬 약해져 있었어요.한때 고구려의 남하로 위기에 빠졌던 백제와 신라는 서로 동맹을 맺어 함께 고구려에 맞서고 있었지요.내부의 안정을 꾀하고 힘을 기른 백제 성왕과 신라 진흥왕은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함께 고구려를 공격했어요.신라와 백제는 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에 빠져있던 고구려를 상대로 쉽게 이길 수 있었어요.그 결과 백제는 한강 하류 지역을, 신라는 한강 상류 지역을 차지했어요.고구려에게 한성을 빼앗긴지 75년 만에 성왕의 노력으로 백제의 오랜 소원이었던 한강 유역을 되찾을 수 있었어요.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빼앗겼지만, 북쪽에서 돌궐과 전쟁을 치르느라 백제와 신라의 공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없었어요.한강을 차지한 신라군은 동해안을 따라 계속 진격하여 함경도 지역까지 진출하였어요.백제 성왕도 한강을 건너 계속 진격해 평양을 공격하고 싶었어요.그래서 성왕은 진흥왕에게 함께 평양을 공격하자고 제안을 했지요.이를 눈치 챈 고구려는 진흥왕에게 함경도 지역을 신라의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