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륵은 가야의 운명이 다했다고 여겨 신라로 넘어가기로 마음먹었어요.제자 이문과 함께 신라에 투항한 우륵은 신라 땅에서 자리 잡고 살았지요.그의 연주 실력은 진흥왕에게까지 알려졌어요.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진흥왕은 궁궐로 우륵을 불러들였어요.우륵은 진흥왕 앞에서 연주했고, 왕은 감탄을 금치 못했어요.진흥왕은 그에게 국원에 가서 살도록 했어요.국원은 지금의 충주 지역이에요. 충주에 가면 탄금대라는 곳이 있는데, 탄금대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는 뜻이지요.우륵은 계고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가야금 연주와 노래, 춤을 가르쳤어요.우륵의 제자들은 스승에게 가야금 연주를 배우고 새롭게 곡을 정비했어요.“스승님, 저희가 열두 곡을 다섯 곡으로 줄였습니다.열 두 곡의 연주곡은 번잡하고 바르지 못합니다.”“어찌하여 내 연주곡을 줄였단 말이냐? 일단 한번 들어나 보자.”우륵은 자신의 연주곡을 줄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크게 화를 냈어요.하지만 제자들이 연주한 노래를 들어본 후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감격의 눈물을 흘렸어요.“즐겁지만 지나치지 않고, 애절하지만 슬프지 않구나.”제자들이 자신의 음악을 더욱 발전시키자, 우륵은 자신이 가야를 버리고 신라 땅에 온 이유가 더욱 명확해지는 듯했어요.가야금 연주곡은 이후 신라의 주요 행사에 연주곡으로 사용되었어요.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요.가야금은 9세기에 일본으로 전해지기도 했어요.신라에서 전해진 가야금이라는 뜻에서 ‘신라금’이라 하지요.당시 전해진 신라금이 일본의 황실 창고인 정창원에 남아 있답니다.우리는 왕산악과 우륵을 한국 음악의 악성이라고 부르기도 해요.악성은 음악을 발전시킨 뛰어난 음악가라는 뜻이지요.삼국 시대 이후에도 거문고와 가야금을 이용한 연주곡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지요.지금도 전해오는 두 악기가 이렇게 오래전에 만들어진 악기라는 사실이 놀랍지요?거문고의 음률은 깊으면서도 절제하는 느낌이 들고, 가야금은 밝고 아름다운 소리가 난답니다.여러분도 거문고와 가야금 연주곡을 들으며 왕산악과 우륵의 노력을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