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국은 지금의 울릉도로 동해에 있는 아주 작은 왕국이었지요.크기는 사방이 1백리 정도였고, 대부분 경사가 급한 지형으로 이루어진 매우 험준한 섬이었어요.위치도 육지에서 배를 타고 이틀은 가야 도달할 만큼 먼 거리에 있었어요.그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우산국은 신라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오랫동안 항복하지 않고 있었어요.울릉도지증왕이 우산국을 정벌하려고 계획하던 때 이사부가 하슬라주(지금의 강릉 지역)의 군주가 되었어요.왕의 명을 받은 이사부는 군사와 군선을 준비하였어요.“우산국 사람들은 성질이 우둔하고도 사납소이다.그래서 그들을 무조건 힘으로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오.그러니 계책을 세워서 그들을 항복시켜야 하오.”이사부는 곧 나무를 깎아 사자를 만들게 했어요.그리고 나무로 만든 사자 상을 군선에 나누어 실었지요.이사부가 이끄는 군선이 우산국의 해안에 도착하였을 때, 이사부는 거짓으로 이렇게 말하였어요.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우산국 사람들아. 만약 너희들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이 맹수들을 풀어 너희들을 밟아 죽이겠다.”사자를 처음 본 우산국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결국 우산국의 우해왕은 쓰고 있던 투구를 벗어던지고 곧 항복하였지요.이사부는 계략을 써서 큰 저항없이 우산국을 신라의 영토로 만들었고, 이후 우산국은 해마다 신라에 토산물을 받쳤어요.이사부는 지증왕을 비롯해 법흥왕과 진흥왕을 모셨어요.지증왕의 명으로 우산국을 정벌하였고, 법흥왕 시기에는 가야를 정벌했으며, 진흥왕 시기에는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한 고구려와의 전투에서도 큰 역할을 했지요.진흥왕 시기 신라는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는데, 이러한 신라의 발전에는 이사부의 끊임없는 노력이 바탕이 되었답니다.여러 왕을 모시며 신라의 전성기를 열었던 이사부는 어떤 신념으로 여러 힘든 전쟁을 이겨 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