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왕이 관산성에서 죽다

성왕은 계속된 전투에 지쳐있을 태자와 군사들이 걱정되었어요.
또한 관산성의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도 싶었어요.
성왕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직접 50명의 호위 군사들과 함께 관산성으로 갔어요.
성왕이 관산성으로 오고 있다는 정보가 김무력에게 은밀하게 전해졌어요.
김무력은 하늘이 준 기회라 생각했어요.
백제의 왕을 사로잡는다면 전쟁을 바로 끝낼 수 있었거든요.
김무력은 관산성으로 오는 길목에 군사들을 보내 조용히 기다리게 했어요.
성왕은 태자를 만날 생각에 급히 말을 몰았어요.
성왕이 이용한 길은 백제 땅이었기에 크게 조심하지 않았어요.
산길을 돌아 관산성에 도착할 무렵 숲 속에서 신라군이 쏟아져 나왔어요.
많은 신라군이 길목을 막고 기습 공격을 하자 성왕은 크게 당황하였어요.
적은 숫자의 군사들로 호위를 받던 성왕은 어처구니없이 신라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어요.
신라군의 지휘관이었던 도도라는 자가 말에서 내려 붙잡힌 성왕에게 두 번 절을 하고 말하였어요.
“왕의 머리를 베게 하여 주소서”
“내 목숨을 노비 출신 장수인 네 놈에게 맡길 수는 없다.”
“우리나라 법에 따르면 서로의 맹세를 어긴 사람은 국왕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노비의 손에 죽을 수 있습니다.”
“내 지금껏 뼈에 사무치는 고통을 참고 살아왔거늘. 구차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어서 베어라.”
성왕은 결국의 도도의 칼에 허무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어요.
성왕이 처참하게 죽자 백제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지요.
이후 벌어진 전투에서 백제군은 크게 패하고 말았어요.
마지막 싸움에서 백제는 여러 장수와 3만 명에 가까운 군사를 잃는 대패를 했어요.
이로써 신라와 백제의 동맹은 완전히 깨어졌고, 이후 신라와 백제는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원수 사이가 되었지요
신라군에게 붙잡히는 성왕
관산성 전투에서 승리한 신라는 한강 유역에서 백제와 고구려를 모두 몰아내고 이 지역을 확실하게 지배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대가야를 정복하여 낙동강 유역을 차지하였지요.
또 동북쪽으로는 지금의 함경남도까지 진출했어요. 두 강과 함께 넓은 평야를 얻게 된 신라는 이전보다 더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었어요.
진흥왕은 새로 차지한 영토에 비석를 세워 신라의 승리를 기념하였어요.
서울 북한산에 있는 순수비도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점령한 후 이 지역을 돌아보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랍니다.
진흥왕은 순수비를 세운 후 북한산 꼭대기에 서서 한강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진흥왕 시기 신라의 영역